민주열사
민주열사 (노동운동가)
이름 : 오원석
민주열사 (노동운동가)
이름 : 오원석
오원석 동지는 지병인 간암으로 8년간 투병생활을 하면서 교육민주화 활동에 누구보다도 앞장서 경기.인천교사협의회 초대 회장을 역임하였다. 50년을 바라보는 반백의 나이에 뒤늦게 교육민주화운동에 투신, 90년 9월 53세의 현직 조합원으로 영면하기까지 동지는 오직 참교육의 나무를 일구는 것이 꿈이었다. 대학 3학년 때 등록금을 마련 못해 군에 있을 때도 교사의 꿈은 결코 버릴수 없어 예편을 서두르고 서른 여섯의 늦은 나이에 대학에 졸업, 결국 교단에 섰다. 참교육비 제막식에서 동료교사는 추모시를 통해 "책상머리에 붙어있는 밥풀을 뜯어 먹으며 숨조이고, 복종하고, 양심을 파는 동료들을 위해 한 말씀 해 주십시오라고 했을 때, '직선의 말이 살아 숨쉬고, 진실이 즐거이 깔린 세상이 올 때까지 마음 비우고 나를 바쳐 섬기라' 하시던" 이라며 동지의 정신을 기렸다.
프로필
1938년 경기도 안성 출생1973년 고려대 영문과 졸업
1990년 전교조 경북지부 인천지부로 부터 참교육상 수상
1990년 9월 지병인 간암으로 운명
1992년 4월 18일 안성군 양성면 덕봉리에 참교육비 세워짐
민주열사 (노동운동가)
이름 : 원태조
민주열사 (노동운동가)
이름 : 원태조
90년 8월 30, 금강공업(주)은 경영부실을 이유로 무기한 휴업공고에 금강공업 노동조합은 농성에 돌입하였고, 이에 안산 경찰서 정보과장이 농성장에 와서 협박을 하고 돌아갔다. 그러던 중 공권력이 투입되어 경찰들이 조합원들을 에워싸고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조합원앞으로 경찰이 계속 포위망을 좁혀왔다. 그러자 박성호 동지(부위원장)가 생수통에 담겨 있는 신나를 몸에 붇고 "더이상 가까이 오면 분신하겠다"고 하자 경찰 현장책임자가 신나통을 손으로 치면서 주변에 있던 조합원들의 몸에 뿌려졌다. 그러자 사태의 심각함을 느낀 원태조 동지 (후생복지부장)도 온몸에 신나를 끼얹었다. 이때 라이터를 들고 있던 부위원장의 손을 낚아채면서 순식간에 원태조, 박성호 동지가 불덩이로 변했고, 이에 아랑곳하지 않은 경찰은 소화기를 뿌리며 조합원들을 무차별 연행했다.
프로필
1953년 7월 7일 출생1989년 안산 금강공업(주)에 입사
1990년 8월 10일 노동조합 결성시 후생복지부장으로 추대
1990년 8월 30일 경찰의 폭압 진압에 의해 분신, 전신 80% 화상
1990년 9월 18일 오전 6시 30분경 운명
민주열사 (노동운동가)
이름 : 유구영
민주열사 (노동운동가)
이름 : 유구영
고려대를 졸업하고 노동운동에 투신한 유구영 동지는 영등포 기계공단 노동조합 사무국장을 거쳐 서노협 선봉대장 및 정책실장으로 활동하던 중 간암에 걸렸음을 알았다. 질환의 성격상 육체적인 무리는 치명적인 것이었음에도 각종 수련회나 교육 등으로 활동을 계속하였다. 이렇듯 병마와 싸워 나가면서도 활동을 그치지 않고 민주노총 건설을 위해 헌신하였으며 95년 12월부터는 민주노총 정책기획실 정책부국장으로 일하였다. 96년 5월 2일, 병세의 악화로 인해 여러 번의 입원과 치료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 권영길 위원장을 비롯한 동지들과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에 새벽 2시 25분경, 원숙한 40대의 생애를 시작하지도 못한 채 운명하였다.
프로필
1957년 출생1981년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졸업, 한국신학대학원 입학
1988년 영등포 기계공단 노동조합 사무국장
1990년 대한 중전기 분회장
1993년 서울지역노동조합협의회 정책실장
1995년 민주노동정책 기획실 정책부국장
1996년 5월 2일 새벽 2시25분경 간암으로 운명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민주열사 (노동운동가)
이름 : 유인식
민주열사 (노동운동가)
이름 : 유인식
유인식 동지는 1982년 고려대 철학과에 입학하여 학내 써클에 가입해서 고교시절부터 생각해왔던 민주화의 대열에 앞장섰으며, 결국 노동자의 삶 속으로 뛰어 들어가야 함을 강하게 의식하면서 1985년 구로공단 내 금속공장에 들어갔으나, 입사한지 몇 개월 후에 신분이 드러나서 공장을 나와야만 했다. 그 후 1986년 9월부터 인천대 앞에서 사회과학 전문서점 "밀물"을 운영하며 또다른 현장생활을 준비해 샘터교회에 첫발을 내디뎌, 87년 5월 샘터교회 청년회를 만들었다. 그러던 동지는 87년 7월말 수련회에 실무위원회 조직부원으로 참가하였다가 동료가 물에 빠지는 사고가 나자 사람과 사람의 손을 연결하여 최선두에 서서 동료를 구하려고 하였으나 운명하고 말았다. 결국 동지는 자신의 안녕보다는 노동자들의 슬픔을 더욱 깊이 생각했으며, 고인이 되는 그 순간까지도 자신보다는 동지를 더욱 사랑했던 것이다.
프로필
1963년 7월 인천 출생1982년 고려대학교 철학과 입학
1985년 노동현장에서 청년회운영위원으로 활동
1986년 샘터교회 청년회 운영위원으로 활동
1987년 한국기독노동자 인천지역연맹 대표자회의 성원, 6월 대투쟁 적극 참여
1987년 8월 1일 샘터교회 노동자들과 함께 인천지역 노동자 여름수련회 체육부장 으로 참여, 동료를 구하고 운명
민주열사 (노동운동가)
이름 : 유재관
민주열사 (노동운동가)
이름 : 유재관
광역의회 선거가 민자당의 압승으로 끝나자, 민중운동에 대한 폭력적인 탄압이 자행되던 시기에 인천 동서식품에 천 여명의 경찰을 투입하여 노동자들을 폭력적으로 연행하였고, 안산의 동영 알루미늄에는 400여명의 경찰을 투입하여 강제해산시켰다. 또한 26일 인하대 총학생회장이 교내에서 불법적으로 강제연행되었고, 27일에는 인천대에 160여명의 백골단이 투입되어 학생들을 폭력적으로 강제 연행하던 중 학생들에게 중상을 입히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 시간에 인천지역 사회운동연합에서 정기총회를 준비하던 회원들은 새벽 1시50분경 인천대 공권력 투입소식을 접하고, '인사연'도 침탈당할 것이라는 판단으로 급히 사무실을 나오다가 유재관 동지가 3층 유리창을 열고 뛰어내렸으나 실족하여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급히 병원으로 옮기던 중 운명하였다.
프로필
1962년 서울 출생1981년 서울 한성고등학교 졸업
1981년 고려대학교 사학과 입학
1983년 학내시위 주도로 장기간 수배
1984년 학원 자율화 조치로 재입학
1985년 고려대학교 졸업
1987년 인천 신흥목재(현 우아미 가구)에서 활동 중 해고
1989년 인천목재노동자회 실무자로 활동
1990년 인천지역사회운동연합 회원으로 활동
남부 노동반 반장 '인사연' 제8차 정기총회 준비위원
1991년 6월 27일 운명
용인 천주교 묘지에 안장
민주열사 (노동운동가)
이름 : 윤용하
민주열사 (노동운동가)
이름 : 윤용하
윤용하 동지는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어려서부터 중국집 배달원, 가방공장 공원 등의 노동일을 하였다. 89년초 대학 출신 현장활동가를 만나면서 열악한 노동현실에 관해 인식하게 된 동지는, 서울 민주화직장청년연합의 풍물강습반에 등록해 활동하기에 이른다. 동지는 평소에 망월동 참배를 원했으며 91년 5월에는 5월 9일 국민대회를 맞춰 광주로 갔고, 5월 9일 분신해서 투병 중이던 박승희 동지에게 문병을 가기도 했다. 91년 5월10일 조국의 참된 자주ㆍ민주ㆍ통일을 위해 많은 젊은이들이 노태우 정권의 사냥감이 되고 만다는 유서를 남기고 윤용하 동지는 분신했다. 분신 이틀 후인 12일 동지는 "노동해방을 위해 분신을 생각했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운명하였다.
프로필
1969년 전남 승주 출생1981년 순천 중앙초등학교 5년 중퇴
1983년 노동일 시작
1989년 성남피혁 근무 민주화운동 직장 청년연합 회원 활동
1991년 5월 10일 "노태우 정권 타도"를 외치며 전남대에서 분신
1991년 5월 12일 운명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민주열사 (노동운동가)
이름 : 이광웅
민주열사 (노동운동가)
이름 : 이광웅
이광웅 동지는 1982년 군산제일고 교사로 재직하던 중 '오송회'사건에 연루되어 교사직을 파면당하고 1987년까지 6년동안 옥중생활을 하였다. 동지는 그 와중에도 도서출판 풀빛에서 시집 '대밭'을 출간하는 등 민족문학작가 활동을 계속하였다. 감옥에서 나와 1987년 군산 서흥중학교에 복직한 동지는 1989년 전교조 결성과 함께 또 다시 해직되었다. 동지는 이에 굴하지 않고, 교육의 민주화와 민족문화활동을 계속하던 와중에 1992년 지병인 암으로 운명하였다.
프로필
1940년 전북 이리 출생 원광대학교 국문과 졸업1974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
1982년 군산제일고 국어교사로 재직 중 '오송회' 사건에 연루, 6년 감옥생활
1985년 첫시집 <대밭> 출간
1987년 군산 서흥중학교에 복직
1989년 전교조 가입으로 해직
1992년 초대 교육문예창작회장 역임
1992년 12월 22일 오후 4시 45분 지병인 위암으로 투병하다가 운명
민주열사 (노동운동가)
이름 : 이대건
민주열사 (노동운동가)
이름 : 이대건
우성택시 90여 조합원들은 87년 11월 24일부터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며 24개 노동조합 노동자들과 연대파업을 벌여왔는데 성과없이 끝나자 88년 1월 6일 파업 19일째에 임금협상 조기체결 및 단체협약 조항의 이행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그러나 회사측은 여전히 교섭에 소극적이었고 노동조합측의 요구사항도 들어주지 않으면서 노동조합의 양보만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협상과정을 지켜보던 이대건 동지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분신을 감행하면서 조속한 요구수락을 촉구하였다. 평소 동지는 조합활동을 열성적으로 해왔으며 파업시에도 유인물, 벽보제작 등을 도맡아 해오는 등 가장 적극적으로 싸워왔다. 그리고 사경을 헤매는 가운데서도 회장에게 "배가 고파서 죽도록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뭐하러 왔느냐, 보기 싫다. 당장 나가라"고 외치며 분개하는 등 운명 직전까지 투쟁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프로필
1956년 6월 16일 경남 창녕군 출생1978년 상은(주)에 입사
1981년 5월 10일 마산 (주)우성택시 입사
1988년 1월 6일 파업농성 19일째에 협상이 결렬되자 단체 협상 위반에 항의하며 회사앞에서 분신
1988년 1월 8일 부산 복음병원 중환자실에서 운명
경남 창녕군 대지면에 안장
민주열사 (노동운동가)
이름 : 이대용
민주열사 (노동운동가)
이름 : 이대용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낸 동지는 노동현장으로 뛰어들어 흔들림 없이 싸워나갔으며, 1988년 진흥요업에서 착취와 비인간적 대우에 반대하는 투쟁을 주도하며 앞으로 이땅, 모든 노동자들이 자기의 위치와 권리를 찾고 주인이 될 수 있도록, 죽는 날까지 노동자로 살아갈 것을 재결단하였다. 그 후 동지는 동양튜브, 선창산업 등에서도 변함없이 투쟁을 계속해 나갔다. 그러던 중 87년 8월1일부터 3일까지 매포수양관에서 열린 인천기노련 주최 '인천지역노동자 여름수련회'에서 일행 중 한 명이 갑자기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발견하고 거의 의식을 잃은 동지를 구출하고 다시 또 물 속에 뛰어들었다가 운명하게 되었다. 동지의 삶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없고 불의에는 한치의 용서와 타협없는 투사였다.
프로필
1963년 4월 3일 전북 고창 출생1977년 인천 석남동소재 선학알미늄 입사
야간중학교 입학
1986년 동양튜브에서 임금인상 30%쟁취 투쟁
1987년 8월 1일 산마루교회 노동자들과 함께 인천지역 노동자 여름수련회에 참여, 물에 빠진 동료를 구하고 운명
민주열사 (노동운동가)
이름 : 이문철
민주열사 (노동운동가)
이름 : 이문철
88년 6월 27일 대원여객의 노동자들이 연장근로수당 지급을 요구하며 운행을 거부하자, 회사측은 승무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동지를 부당 해고시켰다. 이에 동지는 부당 해고에 항의하며 삭발을 결의하고 연장근로수당 지급과 사장면담을 요구하던 중, 부당한 해고조치에 격분하여 신나를 온몸에 붓고 분신을 감행하였다. 병원에서도 "업주들이 기사들을 속여먹고 노예취급을 한다. 돈 몇푼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 대접을 받고 싶다. 노동자를 하인이나 종취급하는 사용자들의 정신상태를 뜯어 고쳐야 한다. 주종관계가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는 말을 끝으로 부인과 세명의 자식들을 남기고 산화하여 갔다.
프로필
1954년 충남 당진 출생1969년 충남 당진중학교 졸업
1970년 인천 신진자동차 공업사에 정비공으로 입사
1986년 대원여객 입사
1988년 10월 부당하게 해고당함
1988년 11월 1일 부당해고와 연장근로 수당 미지급에 항의투쟁 중 분신
1988년 11월 6일 한강성심병원에서 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