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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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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열사 (재야운동가)

이름 : 함석헌

당시 나이 : 88세

민주열사 (재야운동가)

이름 : 함석헌

당시 나이 : 88세

함석헌 선생님은 두 번이나 노벨평화상 후보로 선정될 정도로 일제시대에는 독립운동을, 독재시대에는 민주화운동에 헌신하였다. 일제시대때는 창씨개명과 일본어 수업을 거부하여 오산학교를 사임당하였고, 동경에서 계우회사건으로 평양 대동경찰서에 1년간 복역하기도 하면서 독립운동을 벌인 선생님은 1945년 해방을 맞아 고향에서 용암포 자치위원장, 용산군 자치위원장을 맡아 활동하였다. 1956년부터는 '사상계'를 집필하면서 1961년에는 5·16을 정면으로 공격하는「5·16어떻게 볼까?」를 발표하였고, 1970년에 잡지 「씨 의 소리」를 창간하였다. 1971년에는 삼선개헌반대투쟁위원회를 구성하여 활동하는 한편 민주수호국민협의회를 조직하기도 하였으며 1974년에는 윤보선·김대중과 민주회복국민회의를 만들었고, 1979년 11월 23일, 명동 YWCA사건으로 계엄사에 끌려가 15일간 구속되기도 하는 등 암울한 독재정권 시절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다 1989년 2월 4일 운명하였다.

프로필
1901년 3월 13일 평북 용천군 출생
1919년 3·1운동에 참가한 후 학업 중단
1938년 3월 창씨개명과 일본어 수업을 거부하고 오산학교를 사임당함.
1940년 8월 동경에서 계우회사건으로 1년간 복역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아 용암포 자치위원장, 용산군 자치 위원장 됨
1961년 6월 5·16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글를 발표
1971년 8월 삼선개헌반대투쟁위원회 구성 민주수호국민협의회를 조직, 대표위원
1974년 11월 윤보선·김대중과 민주회복국민회의를 만듬, 대표위원 역임
1979년 11월 23일 명동 YWCA사건으로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에 끌려가 구속
1985년 두 번째로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
1989년 2월 4일 운명

민주열사 (재야운동가)

이름 : 황인철

당시 나이 : 53세

민주열사 (재야운동가)

이름 : 황인철

당시 나이 : 53세

황인철 동지는 유신 시대 이래 20년 가까이 권력의 폭압과 횡포에 맞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옹호해 온 인권변호사의 상징으로 평가받고 있다. '인권변호사'라는 개념조차 없던 불모의 시대인 박정희 유신정권 아래서 민청학련 사건 변호를 맡으면서 인권 변호사의 길로 들어서 70, 80년대 시국사건의 변호를 맡았는데 민청학련 사건, 김지하 반공법위반사건, 3.1구국선언사건, 동아·조선투위사건, 청계피복노조사건, 한승헌 필화사건, 동일방직노조사건, YH사건,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 원풍모방사건, 강원대 성조기 방화사건, 오송회 간첩사건, 대우어패럴사건, 서울미문화원사건, 건국대사건, 부천서 성고문사건, 박종철사건, 문익환 목사 및 임수경·문규현 방북사건, 윤석양사건 등의 사건이 그것이었다. 또 자신을 포함한 젊고 진보적인 변호사들이 함께 조직한 '민주사회을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결성과정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프로필
1940년 1월 24일 충남 대덕 출생
1961년 10월 13회 고등고시 사법과 합격
1962년 2월 서울대학교 법대 졸업
1981년 '전국자폐아부모회' 회장 역임
1988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대표역임
1989년 경제정의실천연합 공동대표 역임
1990년 민주화실천변호사모임 대표간사 역임 직장암 진단을 받음
1991년 윤석양 사건 변론 맡음 1992년 '계명복지회' 회장 역임
1993년 1월 20일 지병으로 운명
경기도 안성 천주교 공원묘지에 안장

민주열사 (노동운동가)

이름 : 강민호

당시 나이 : 24세

민주열사 (노동운동가)

이름 : 강민호

당시 나이 : 24세

한신대학 시절 강민호 동지는 모범적인 생활 태도를 견지하여 많은 동료와 후배들에게 신뢰와 존경을 받아왔다. 동지는 이 땅의 구체적 현실에 눈을 뜨게 되면서 민주화 운동에 헌신적으로 앞장서 왔으며 구로구청 부정투표함 사건에서 최후의 순간까지 투쟁하다 2년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동지는 노동자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어서 대학졸업장을 거부하고 노동자의 삶을 자기의 삶으로서 받아들이기로 작정하고 노동현장으로 뛰어들었다. 동지가 다니던 공장은 약150여명의 노동자가 일하는 대붕전선이라는 회사로서 12시간 주야 맞교대 근무제로서 장시간 노동의 열악한 근로조건을 지니고 있었다. 동지는 입사한지 7일째 되던 날 야간 작업을 하다가 연신기 주위에 있는 폐선을 치우기 위하여 1.5미터 되는 연신기 기계 사이의 통로를 지나다가 메고 있던 폐선이 회전하는 연신기에 휘말리면서 몸도 따라 들어가 비명 소리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운명하였다.

프로필
1966년 2월 16일 전북 출생
1981년 2월 도봉중학교 졸업
1984년 동성고등학교 졸업
1985년 3월 한신대학교 경영학과 입학
1986년 10월 건국대 애학투련사건으로 구속, 집행유예로 석방
1987년 12월 구로구청 부정개표 사건으로 2년 선고
1988년 10월 특별사면으로 석방, 복학
1990년 3월 28일 대붕전선 입사
1990년 4월 4일 야간작업 중 기계에 휘말려 운명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민주열사 (노동운동가)

이름 : 강현중

당시 나이 : 26세

민주열사 (노동운동가)

이름 : 강현중

당시 나이 : 26세

89년 9월 4일 인천 주안5공단에 소재한 경동산업에서 노동자 5명이 집단 분신 할복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저임금과 장시간의 노동, 산재, 노동조합집행부의 어용성, 대량해고 등 노동자들의 탄압에 전형적인 모습을 가진 경동산업은 열악한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노동조합의 민주화를 위해 조합원들로 구성된 친목단체 '디딤돌' 회원들이 8월 투쟁 2주년을 기념하고 9월 대의원 선거에 앞서 단결을 모도하기 위하여 일일 찻집을 개최하였다. 그러나, 회사측은 노동자들을 징계에 회부하였다. 21명이 복지관 4층 옥상에서 농성투쟁에 들어갔으나 회사측은 구사대를 동원하여 농성 노동자들을 고립시켰으며, 지원나온 가족들과 해고 노동자들을 실신할 정도로 집단 폭행하는 등 사태를 극한 상황으로 몰고 갔다. 이런 상황속에서 최종 협상을 위해 노무이사와 담판을 하러 갔으나 '징계를 받지 않으면 구속시키겠다'는 식으로 노동자들을 격분시켰고, 급기야 동지들은 분신, 할복하게 된 것이다.

프로필
1963년 4월 27일 충북 음성 출생
1981년 10월 5일 인천 제물포 고등학교 중퇴
1987년 12월 5일 경동산업 입사
1988년 5월 4일 <디딤돌>이라는 친목회를 구성하여 회장으로 활동
1989년 8월 31일 ∼ 9월 4일 회사의 부당징계조치에 항의농성
1989년 9월 4일 노무이사와의 담판이 결렬되자, 노무이사에게 신나를 끼얹고 함께 분신, 조합원들에게 "경동의 동료들은 싸워 이깁니다" "노동자는 승리합니다"라고 절규
1989년 9월 9일 한강 성심병원에서 운명
부여 선산에 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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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열사 (노동운동가)

이름 : 고정자

당시 나이 : 미상세

민주열사 (노동운동가)

이름 : 고정자

당시 나이 : 미상세

고정자 동지는 78년 입사하여 일하던 중 팔다리가 마비되고 우울증, 성격변화 등으로 큰 고통을 받았다. 매년 특수건강검진 결과 정상 판정이었다가, 91년 원진레이온 전·현직 노동자 1500명에 대한 역학조사 결과 한가지만 직업병으로 발견되었다. 의학적으로는 직업병이었고 법률적으로는 정상으로 판정되어 1년간 방치되는 과정에서 증세가 더욱 악화되어 직업병 증세인 정신분열로 자살하게 되었다. 운명 2일 후 노동부는 이를 직업병으로 인정치 않음으로서 수많은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프로필
1978년 원진레이온 입사 후 처리 정련과에서 15년간 근무
1991년 직업병 증세 발견
1993년 5월 21일 직업병에 의한 정신분열로 스스로 목숨을 끊음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민주열사 (노동운동가)

이름 : 권미경

당시 나이 : 22세

민주열사 (노동운동가)

이름 : 권미경

당시 나이 : 22세

지역 노동자들의 독서모임인 '도서원 광장'에 나가면서 노동자의 의식에 눈을 떴고, 자랑스런 노동자의 모습을 잃지 않았던 권미경 동지는 신발업체인 대봉에서 91년 11월부터 어용노동조합의 협조 속에서 30분 일 더하기 운동, 구사운동과 전국적으로 확산되던 노동통제강화에 맞서 공장 옥상에서 투신, 죽음으로 항거하였다. 다음은 팔뚝에 쓴 유서 전문이다. "사랑하는 나의 형제들이여! 나를 이 차가운 땅에 묻지 않고 그대들 가슴 속에 묻어주오. 그때만이 우리는 완전한 하나가 될 수 있으리. 인간답게 살고 싶었다. 더이상 우리를 억압하지 마라. 내 이름은 공순이가 미경이다."

프로필
1969년 전북 장수 출생
1982년 2월 부산 아미 초등학교 졸업
보세공장 취업으로 노동자생활 시작함
1985년 공장생활을 하면서 동주여자중학교 야간 졸업
1990년 (주)대봉에서 미싱공으로 근무
1991년 12월 6일 (주)대봉 3층 옥상에서 살인적인 노동문제에 항거하여 투신
양산 솥발산 공원 묘역에 안장

민주열사 (노동운동가)

이름 : 김경숙

당시 나이 : 21세

민주열사 (노동운동가)

이름 : 김경숙

당시 나이 : 21세

김경숙 동지가 근무하던 YH무역은 수십 억의 돈을 미국으로 빼돌리고 폐업을 자행하는 회사였다. 이러한 YH무역의 폐업에 맞선 노동자들은 신민당사 농성투쟁을 벌이게 되었다. 그러나 박정희 군사독재를 등에 업고 가혹한 탄압을 진행하는 공권력의 위협은 동지를 투신하게까지 만든다. "몸은 비록 병들었지만 마음은 상하지 않은 인간으로서 올바른 삶을 살리라 다짐한다."라는 동지의 글에서도 볼 수 있듯이 YH노동자들의 투쟁은 그들이 본디 강인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존권과 단결권을 지키기 위해 착취당해 왔던 소극성을 버리고 과감히 일어서 이루어진 것이다. YH 노동조합의 투쟁은 민주노동조합을 파괴하는 악덕자본가와 이를 비호하는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노동자의 단결된 힘을 보여준 역사적인 투쟁이었으며, 결국 이 사건은 부마항쟁으로 이어져 18년에 걸친 박정희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도화선이 되었다.

프로필
1958년 6월 5일 전라도 광산군 출생
1973년 서울로 상경, 한품섬유, 태진산업, 이천물산 등을 전전
1976년 8월 30일 YH무역(주) 입사
1977년 6월 녹지야학 입학
1978년 3월 YH 노동조합 대의원으로 선출
1979년 3월 30일 YH무역(주) 일방적 폐업공고 발표로 YH 사건 시발
4월 13일 YH 노조 폐업철회 공장점거 농성
5월 YH노동조합 조직부 차장으로 피선
8월 9일 신민당 당사 점거 농성
8월 11일 새벽 2시 2천여명의 경찰이 신민당사에 난입, 강제해산시키는 과정에서 동맥끊고 투신, 운명
마석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민주열사 (노동운동가)

이름 : 김낙성

당시 나이 : 39세

민주열사 (노동운동가)

이름 : 김낙성

당시 나이 : 39세

김낙성 동지는 미아전화국 창동분국 시절 기독교 신우회 활동 등을 통한 성실함으로 조합원들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91년 4월의 대의원 선거에서 어용지부장을 제치고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 동지는 자신을 택해준 조합원들에게 실망을 주지않기 위해 열심히 활동을 해나갔다. 동지는 이후 91년에 어용노동조합의 부당간섭에 항의하는 등 농성에 적극 가담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본격적인 노동운동을 하게 되었다. 동지는 어려울 때 노동조합 민주화추진위원회를 확대, 강화하여 투쟁의 불길을 더욱 거세게 일으켜 세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특히 93, 94년에는 노동조합을 해산하고 여용산별 노동조합을 만들려는 공작을 펴는가 하면, 위원장, 지부장 임기를 3년 연장하는 등의 한국통신 노사 양측의 반민주적 음모에 맞서 모든 정신과 육체를 민주노동조합 사수에 바쳤다.

프로필
1955년 12월 3일 충북 음성 출생
1975년 12월 19일 용산공업고등학교 통신과 졸업
1991년 5월 한국통신노동조합 개혁모임에 참가
1992년 4월 서울지방본부 대의원 피선
1992년 5월 민주개혁그룹 대의원 다수 확보 활동
1992년 7월 서울지역 노조민주화추진위원회 결성
1993년 3월 조합집행부의 징계기도에 맞서 저지 투쟁 전개
1993년 11월 전국 노조민주화추진위원회 결성
1993년 12월 복지후퇴 및 직선제 사수 투쟁위원회 결성
1994년 4월 17일 백혈병으로 운명
금촌 기독공원묘지에 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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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열사 (노동운동가)

이름 : 김봉환

당시 나이 : 53세

민주열사 (노동운동가)

이름 : 김봉환

당시 나이 : 53세

김봉환 동지는 77년 원진레이온에 입사하여 성실한 노동자로 일했으나 입사 후 차츰 몸이 쇠약해지더니 급기야 CS2 중독 초기 증상인 두통과 소화불량, 손발이 저리는 등의 증상으로 83년 원진레이온에서 퇴사하였다. 그후 건물 경비 등으로 생활을 꾸려 나가던 중 두통, 마비증세에 시달리다 89년에 쓰러져 말을 더듬거리기 시작하여 90년 10월 진료를 받아본 결과 "이황화탄소 중독의증 및 고혈압"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자기의 병이 직업병임을 안 동지는 원진레이온 회사측에 산재요양을 요구하게 되었으나, 진단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요양신청을 해줄 수 없다고 거절했고, 노동부 또한 회사를 두둔하며 접수조차 거부하였다. 동지는 이에 굴하지 않고 계속적인 싸움으로 마침내 91년 1월 5일 노동부로부터 요양신청서를 접수하라는 통보를 받았으나 바로 그 날 운명하였다.

프로필
1938년 12월 11일 출생
1977년 12월 22일 원진레이온 입사 (원액2과 근무)
1990년 9월 퇴사 후 쓰러져 말을 더듬기 시작
1990년 11월 26일 사당의원에서 이황화탄소 중독 및 고혈압 진단받음
1990년 11월 27일 노동부와 회사 측 요양신청 거부
1991년 1월 5일 노동부로부터 요양신청서 접수 통보받음
1991년 1월 5일 오후 1시경 쓰러져 병원으로 옮겼으나 밤 10시 30분경에 운명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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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열사 (노동운동가)

이름 : 김상옥

당시 나이 : 33세

민주열사 (노동운동가)

이름 : 김상옥

당시 나이 : 33세

김상옥 동지는 80년 서강대 문과대학에 입학하여 학생운동을 활발히 벌였다. 4학년에 들어설 무렵 군입대를 하루 앞둔 3월 24일 시위 주도로 구속되었고, 83년 12월 출소한 김상옥 동지는 노동운동을 고민하게 된다. 첫 발을 들여놓은 곳은 농약을 포장하는 회사였고, 지독한 농약냄새를 마셔가며 처음으로 힘든 노동을 하게 되지만 동지는 즐겁게 생활했으며, 우연히 구로공단 내 선진적인 남성노동자들을 양성하는 조직, '대나무'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이후 동일기업에 입사하여 노동조합설립을 위해 싸우다 공문서 위조 혐의로 구속되어 두 번째 감옥생활을 하게 되었다. 석방된 뒤 한국민주노동자연합, 남부지역금속노동조합에 참여하였고 다시 철공장에 취업하였으나 작업 중 허리를 다쳐 디스크 수술을 받게 되었다. 그후 민족민주운동연구소, 서강대 민주동문회에서 활동하였으나 위암으로 인해 운명하고 말았다.

프로필
1961년 1월 7일 서울 출생
1980년 서강대학교 문과대 입학
1983년 민주화시위 주도로 구속
1984년 노동현장에서 일함
1985년 서울노동운동연합의 대중모임 '대나무' 활동
1986년 구로 동일기업 노조설립 투쟁으로 구속
1988년 한국민주노동자연합 편집위원
1990년 민족민주운동연구소 노동분과 국제분과 연구원
1991년 서강대학교 민주동문회 사무국장
1992년-93년 한국민주노동자연합 홍보부장
1994년 2월 19일 위암으로 운명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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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화 운동의 상징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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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화 운동의 상징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