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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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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열사 (재야운동가)

이름 : 김남주

당시 나이 : 48세

민주열사 (재야운동가)

이름 : 김남주

당시 나이 : 48세

우리에게 80년대를 대표하는 저항시인으로 남겨져 있는 김남주 시인은 고등학교 재학 당시부터 입시위주 교육에 반대하여 자퇴를 하고 대학 입학 후에도 3선개헌 반대운동과 교련반대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다 제적되고, 고향 해남에 내려가 농사를 지으면서 시를 써 등단했다. 79년 남조선 민족해방전선(남민전) 사건으로 투옥돼 80년대를 감옥에서 보내면서 우유갑이나, 밑씻개용 휴지 등에 쓴 시들을 묶은 시집 '진혼가', '나의 칼 나의 피', '조국은 하나다' 등을 통해 그 시대의 폭압적 현실의 한복판을 날카롭게 꿰뚫는 시를 발표했다. 88년 12월 석방된 뒤 민족문학작가회의 상임이사 및 한국민족 예술인 총연합 이사 등을 맡아 민족문화운동에 힘을 쏟아왔던 동지는 민족민중운동의 대동단결을 호소하며 오랜 감옥생활과 석방뒤의 과로 등이 겹쳐 얻은 췌장암으로 운명하였다.

프로필
1946년 전남 해남 출생
1964년 광주일고 입학 후 자퇴
1969년 대입검정고시를 거쳐 전남대학교 문리대 영문과 입학
3선개헌 반대운동과 교련반대운동에 주도적 참여
1973년 반유신투쟁을 전개하다 투옥, 제적
1978년 '남조선 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 가입
1979년 '남민전' 조직원으로 활동 중 체포, 구속
1984년 첫시집 "진혼곡" 출간
1988년 9년 3개월만에 석방
1994년 2월 13일 새벽 췌장암으로 투병중 운명
1994년 2월 16일 민족시인 故 김남주 선생 민주사회장으로 장례식 치룸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민주열사 (재야운동가)

이름 : 김말룡

당시 나이 : 69세

민주열사 (재야운동가)

이름 : 김말룡

당시 나이 : 69세

한평생을 노동운동에 헌신하였던 김말룡 동지는 당시 69세로 매우 건강한 체질로 노익장을 과시했는데, 1996년 10월 3일 워커힐 뒤 아차산을 조카와 함께 등반하던 도중 정상 부근에서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켜 풍납동 소재 서울중앙병원으로 급송하였으나, 같은 날 오후 5시 30분경 끝내 숨을 거두었다. 동지는 노동자들이 탄압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새벽 세시에도 사건 현장으로 달려가곤 했으며 운명하기 전날인 10월 2일에는 민주노총 투쟁본부 회의에서 밤10시까지 각 단사 위원장들과 함께 노동법 개정문제와 관련한 회의를 갖기도 하였다.

프로필
1927년 2월 2일 출생
1945년 11월 조선기계제작소 노조 선전부장
1946년 8월 노사분쟁사건 관련, 구속
1954년 3월 이승만 대통령 유시위반사건 관련 수배
1956년 10월 노총 자유당 기관단체 탈퇴운동 주도
1961년 7월 박정희 대통령 비난사건 관련 구속
1980년 5월 5·18 사건 관련 구속
1992년 4월 제14대 국회의원 (전국구)
1996년 10월 3일 오후 5시30분 운명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민주열사 (재야운동가)

이름 : 김병곤

당시 나이 : 37세

민주열사 (재야운동가)

이름 : 김병곤

당시 나이 : 37세

김병곤 동지는 1974년 4월 "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사건으로 군사법정에서 이철, 유인태, 김지하 등과 함께 21세의 가장 어린 나이로 구속되어 사형이 구형되었으나 최후진술 첫마디에서 사형이 구형된 것에 대해 '영광입니다' 라고 외침으로써 많은 감동을 주었다. 1987년 12월 구로구청사건으로 구속되어 교도소 생활을 하던 중 건강에 이상을 느껴 교도소와의 싸움 끝에 외래진료를 받았으나 진행성 위암 3기로 판명되어 88, 89년 두차례의 수술을 받았으나 1990년 12월 6일 오랜 투병생활 끝에 그토록 바라던 민주세상을 보지 못한 채 운명하였다.

프로필
1971년 2월 부산고등학교 졸업
1971년 3월 서울대학교 상대 입학
1973년 유신반대 시위로 첫 구속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선고
1984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 가입
1985년 민민투사건으로 구속
1987년 구로구청 사건으로 구속 (투쟁지도부 상황실장)
1990년 12월 6월 위궤양 및 위암 3기로 오랜 투병 생활 끝에 운명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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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열사 (재야운동가)

이름 : 김병구

당시 나이 : 35세

민주열사 (재야운동가)

이름 : 김병구

당시 나이 : 35세

87년 대통령 선거에 대한 선거부정을 확신하던 김병주 동지는 이에 대한 추적조사를 통해 전면적인 조작선거였음을 발견하였다. 선거구와 투표구별로 퍼센트를 안배할 때 전면 조작하였고 투표함을 바꿔치기도 하고 이를 통해 지역감정과 민족분할을 꾀해 지배체제의 기득권과 정권 유지를 위해 민족에 대한 죄악을 서슴지 않고 자행하였음을 폭로하고 88년 연세대학교 학생회관 4층에서 가족과 학생들에게 보내는 유서를 남기고 투신하였다. 이로 인해 병상에서 투병하다 90년 9월 2일에 자결하였다.

프로필
1955년 1월 21일 전남 장성 출생
1971년 5월 독학으로 검정고시 준비
1975년-76년 삼영산업(주) 근무
1980년 민주화 운동에 참여 개헌 투쟁참여
1987년 6월 항쟁 참여
1988년 10월 18일 제13대 대선 및 총선 부정 고발 연세대학교 학생회관 4층에서 투신
1990년 9월 2일 병상 생활 중 자결하여 운명

민주열사 (재야운동가)

이름 : 김상원

당시 나이 : 33세

민주열사 (재야운동가)

이름 : 김상원

당시 나이 : 33세

동지는 1986년 3월 10일 저녁 영등포 우체국 앞에서 검문에 항변했다는 이유로 영등포경찰서 직할 중앙파출소에 끌려갔다. 경찰들의 무차별 구타로 앞이빨 6대가 부러지고 두부 좌측 피하혈종에 비강내출혈, 좌측 안검부종에 뇌좌상 등 온몸을 얻어맞아 피투성이가 되어 식물인간이 된 채 영등포경찰서에 의해 영등포 시립병원에 행려환자로 위장, 입원되어 철저하고도 조직적인 은폐 아래 중환자실에서 77일간을 신음하다 5월 26일 사망하였다. 동지의 가족들은 진상을 밝히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사건의 목격자들을 찾아냈고, 집단 구타와 폭행으로 사망한 것이 분명해졌다. 이후 동지의 가족들은 사건을 은폐조작으로 미궁에 빠뜨리려는 경찰에 맞서 직접 증거를 수집하고 항의농성, 진정, 법정투쟁으로 5년여만에 법정에서 경찰에 의한 폭행사실을 밝혀내고 민사소송에서도 승리하였다. 이 사건은 의문의 죽음이 최초로 해결된 경우로 기록될 것이다.

프로필
1957년 5월 17일 출생
1986년 3월 10일 영등포에서 불신검문에 항의하다가 연행됨
1986년 5월 26일 식물인간으로 투병생활 중 운명
1990년 12월 민사소송에서 경찰의 유죄가 인정됨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민주열사 (재야운동가)

이름 : 김선호

당시 나이 : 31세

민주열사 (재야운동가)

이름 : 김선호

당시 나이 : 31세

92년 10월 26일 오후 1시경 부산시 사하구 장림지역은 처음으로 강제철거를 맞게 되었다. 100여명의 철거반원과 중장비를 동원한 그들은 무력으로 몰아붙였으나 이를 저지하기 위해 주민들과 김선호 동지는 LPG가스 배출로 위협하였고, 부상당한 부녀자의 몸부림으로 강제철거를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집을 지켜냈다는 기쁨도 잠시, 11월 3일 오전 대대적인 강제철거가 다시 감행되었다. 공권력이 투입되어 철거깡패를 돕는 상황이었고 주민들이 함부로 다루어지고 이리저리 끌리며 당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동지는 참다못해 그들과 몸싸움을 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집단구타로 운명하게 되었다.

프로필
1961년 7월 전남 여천 출생
1991년 12월 부산시 장림1동 철거대책위 교육부장 역임
1992년 10월 총무 역임
1992년 11월 3일 "끝까지 투쟁하여 주거권을 쟁취하자" 라고 외치며 철거에 맞서 싸우다 철거깡패의 집단구타로 운명
부산 팔송 시립공원묘지에 안장

민주열사 (재야운동가)

이름 : 김순복

당시 나이 : 29세

민주열사 (재야운동가)

이름 : 김순복

당시 나이 : 29세

김순복,손구용 두 동지는 1994년 2월 1일 "UR재협상, 국회비준 거부, 농업대개혁 쟁취를 위한 전국농민대회" 참석을 위하여 진양군 농민회 사무실에서 아침 6시 25분경 서울로 출발하여 전농의 지침에 따라 도방송차량을 가지고 올라가야 했다. 이 방송차량을 손구용, 김순복 동지가 맡기로 하고, 진양군 농민회 본대 버스 뒤를 따라 손구용 동지가 운전하는 1톤 트럭이 진주→김천 방면으로 동시에 출발하였다. 신청군의 도로는 전날 내린 비와 눈으로 얼어 빙판길이었다. 두 동지가 탄 차량이 경남 함양군 수동면 내백리 남효부락앞 S자형 커브지점 빙판길에서 미끄러져 반대편 언덕쪽으로 추락지점에서 느티나무(지름 약 30㎝)와 충돌하여 김순복 동지는 두개골 파열로 즉사하였으며 손구용 동지는 두개골 파열로 경상대학교 부속병원으로 옮겼으나 산소 호흡기로 연명하다 저녁 8시 50분경에 운명하였다.

프로필
1965년 경남 통영출생
1984년 경상대학교 사회학과 입학
1991년 경상대학교 총학생회 연대사업국장
1993년 전국농민회 총연맹 경남도연맹 간사
1994년 2월 1일 손구용 동지와 함께 서울 농민대회 참석 도중 도로에서 참사를 당하여 두 개골 파열로 그 자리에서 운명

민주열사 (재야운동가)

이름 : 김영자

당시 나이 : 50세

민주열사 (재야운동가)

이름 : 김영자

당시 나이 : 50세

1966년 서울대 농대를 졸업한 뒤 정읍농고 교사 생활을 시작으로 이어진 동지의 삶은 자주적인 여성농민운동 조직의 건설과 지역운동의 대모로서의 활동에 이르기까지 25년간 "고난의 가시밭길 속에서도 평정을 잃지 않은 모습"이었다. 1977년 동지가 산파역할을 한 한국가톨릭 농촌여성회는 해방 이후 최초의 전국적인 여성농민 단일조직으로서 이후 89년 전국여성농민위원회를 거쳐 현재는 전국 60개 군에 조직을 갖춘 '전국여성농민회 총연합'으로 확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슬하에 4남매를 둔 어머니이면서도 아내로서의 역할을 소중히 여겼던 동지는 여성농민의 권리회복을 위해 지칠 줄 모르는 삶을 살아갔으며, 결국 위암선고를 받고 투병 중 운명하였다.

프로필
1944년 3월 2일 충남 출생
1963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농가정학과 입학
1966년 대학 졸업
정읍농림고등학교 교사로 3년간 재직
1969년 3월 상계동에서 비닐하우스 시설원예 농사 시작
1975년 지역탁아소인 '원터 어린이집' 운영
1977년-78년 '가톨릭농촌여성회' 초대회장 역임
1986년 성남민주화운동연합 여성분과 위원장
1989년 경기도 여성농민위원회 총무 역임
1990년 '큰우리 소비자 협동조합' 이사장 활동
1993년 3월 위암진단을 받고 투병
1993년 9월 11일 오전 9시 30분 운명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민주열사 (재야운동가)

이름 : 김영환

당시 나이 : 26세

민주열사 (재야운동가)

이름 : 김영환

당시 나이 : 26세

김영환 동지는 명지대생 강경대 동지가 운명한 그 다음날 자취방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김영환 동지는 4월 25일까지 자취방에 있는 모습을 집주인이 보는 등 생존한 모습이 보였으나, 그후 행적이 눈에 띄지 않았다. 동지는 한겨레사회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민족문제, 군축문제, 통일문제 등에 대한 정력적인 연구와 논문발표 등의 활동을 벌였고, 죽음 직전 윤석양 후원사업회 관계자들을 만나 군 내부의 인권문제에 관한 자료를 전달 받았으며 그후 기무사 요원이 동지의 행적을 감시한 것이 밝혀진 바 있다. 그러나, 동지의 사인에 대해서 밝히지를 못하고 가족과 동료들에 의해 장례가 치루어졌다.

프로필
1965년 2월 15일 강원도 삼척 출생
1984년 2월 삼척고등학교 졸업
1984년 3월 고려대학교 불문학과 입학
1989년 한겨레사회연구소연구원 (한미군사관계, 평화, 군축문제, 남북관 계, 통일문제 등을 연구)
1991년 4월 7일 자취방에서 변사체로 발견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민주열사 (재야운동가)

이름 : 문영수

당시 나이 : 29세

민주열사 (재야운동가)

이름 : 문영수

당시 나이 : 29세

문영수 동지는 1982년 8월 19일 저녁 9시경 광주시 중흥동 소재 덕천여인숙에서 김광호와 함께 술을 마시다 싸움을 하게 되었다. 이에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사건현장에서 동지를 검거하여 역전파출소로 연행했다. 김광호는 피를 흘리며 효성병원으로 후송되고 문영수는 서부경찰서 형사계로 인계되었다. 증언에 의하면 문영수는 연행될 당시 아무런 부상도 없었고 건강상태도 매우 좋았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경찰은 연행 다음날 1982년 8월 20일 오전 9시경 순찰중 중흥동 노상에서 신음중인 환자를 발견하여 광주시 유동 소재 조세현 외과에서 응급조치를 시킨 후 광주 적십자병원에 행려환자로 허위 입원시켰으나 1982년 8월 22일 오후 6시경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결국 동지의 사체는 본적, 주소 일체불상인 행려병 환자로 취급되어 1982년 8월 23일 전남의대 해부학 교실로 넘겨지고 몇개월간 보관되다 실습용으로 사용되었다.

프로필
1953년 11월 10일 출생
청량리 초등학교 졸업
진아교통 버스기사로 일함
1982년 8월 19일 경찰에 연행되어 구타와 폭행을 당함
1982년 8월 22일 광주적십자 병원에서 운명
행려병환자로 위장된 채 해부학실습용으로 사용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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