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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소
- 민주공원(민주항쟁기념관) 잡은펼쳐보임방(기획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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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사기간
- 2026-04-14(화) ~ 2026-05-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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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
- 09:00~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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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매시작
- 2026-04-14(화)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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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매마감
- 2026-05-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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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의
- 051-790-7482
상세설명
전시서문
1970년대 후반 한국미술은 사회 현실과의 관계를 다시 묻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1979년 결성된 ‘현실과 발언’과 광주의 ‘광주자유미술인협회’ 등의 활동은 이후 민중미술이 형성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후 1980년대 초 ‘두렁’ 등 현장 중심의 실천이 등장하면서 민중미술은 전시장을 중심으로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려는 흐름과, 삶의 현장 속에서 예술의 역할을 모색하려는 흐름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전개되었다. 1985년 이후 민주화운동이 확장되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다양하게 확장되었고, 민중미술은 전시장과 사회 현장을 오가며 한국 현대미술의 중요한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정하수는 이러한 민중미술의 흐름 속에서 주목되는 작가다. 1951년 부산에서 태어나 17세에 서울로 올라간 그는 화랑과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독학으로 그림을 익혔다. 직공으로 일하며 부산과 서울을 거쳐 1979년 대구에 정착한 그는 제도적 미술 교육 없이 작업을 시작했으며, 노동의 경험에서 형성된 감각과 현실 인식이 이후 작업의 토대를 이룬다. 1980년대 대구에서 그는 작업실이자 화실이었던 '투명화실'을 중심으로 작가와 학생, 문화운동가들이 교류하는 장을 만들었다. 그의 판화는 집회와 강연, 소식지와 포스터 등 민주화운동의 현장에서 폭넓게 사용되었다. 특히 판화와 공동 작업, 걸개그림 제작 등은 미술이 사회와 만나는 또 다른 방식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활동은 미술을 삶의 현실과 연결하려 했던 당시 문화운동의 흐름과도 깊이 맞닿아 있었다.
부산민주공원은 한국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기억하고 시민사회와 공유하는 공간이다. 정하수의 작업을 이곳에서 조명하는 일은 민주화운동의 문화적 실천이 지역과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다시 바라보는 일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는 정하수의 작업을 세 시기로 나누어 살펴보며, 시대 현실 속에서 미술의 역할을 어떻게 모색했는지를 조망한다.
1부 1970년대
정하수는 195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7세 때 돈을 벌기 위해 무작정 서울로 올라간 그는, 미술학교 대신 서울의 화랑과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독학으로 그림을 익혔다. 직공으로 일하며 노동 현장을 전전하던 그가 미술에 가닿은 경로는 제도 바깥의 것이었다. 1979년 대구에 정착하기까지 부산과 서울을 거친 그의 이동 경로는 단순한 생계의 궤적이 아니라, 이후 그의 작업이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의 형성 과정이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서 1970년대는 정하수 작업의 형성기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추상화를 비롯해 노동의 현장과 도시의 거리에서 출발한 초기 작품을 살펴본다.
2부 1980년대
1980년대는 정하수의 작업이 사회 현실과 본격적으로 만나는 시기였다. 1979년 대구에 정착한 그는 ‘투명화실’을 운영하며 젊은 미술가들과 교류했고, 이곳은 광주 비디오 상영과 판화 자료가 공유되는 토론의 공간이 되었다.
1984년 〈인간전〉, 1985년 〈지금 우리는…〉전에 참여하며 지역 민중미술의 흐름 속에서 활동했지만, 그의 관심은 점차 전시장을 넘어 현실의 현장으로 향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정하수의 판화는 민주화운동 단체의 소식지와 포스터, 유인물에 사용되며 집회와 문화운동의 현장에서 널리 활용되었다. 1989년 그는 〈민족해방운동사 걸개그림〉 제작에 참여하며 공동 창작 작업을 이끌었다. 같은 해 민주화운동 관련 활동으로 구속되어 징역 1년 6개월, 자격정지 2년, 집행유예 3년의 판결을 받았다. 이 시기 그의 미술은 표현을 넘어 시대와 연대하는 실천이었다.
3부 1990년대 이후
1989년 구속과 집행유예 이후, 정하수의 활동 경로는 크게 바뀌었다. 그는 예술마당 솔에서의 전시를 마지막으로 화단을 떠났고, 경북 청도로 내려가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운동의 열기가 가라앉고 민중미술이 제도권으로 편입되거나 해체되던 1990년대, 그는 전시장 밖에서 조용히 작업을 이어갔다. 이 시기 그의 작업은 목탄, 콘테, 파스텔, 연필, 크레파스 등 다양한 재료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민중의 삶을 형상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특히 알루미늄 깡통에 직접 만든 강필을 사용한 작업이 눈에 띈다. 재료 자체가 노동의 감각을 담고 있으며, 도구를 스스로 만들어 쓰는 방식은 그의 출발점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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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1984, 캔버스에 유채, 23.5*16.8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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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손국수, 1985, 종이에 목판, 32*52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