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자주의 등불 故 배다지 의장 시민사회장 영결식
| 작성자 | 민주공원 | 작성일 | 2024-04-15 | 조회수 | 6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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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자주의 등불 故 배다지 의장 시민사회장 영결식이 4월 15일(월) 오전 9시 30분부터 민주공원 앞마당에서 열렸습니다. 영결식에서는 민중의례와 故 배다지 의장의 약력보고, 부산민예총 양일동 소리꾼의 추모소리, 문정수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명예이사장의 조사, 박영식 목사의 조가, 박철 시인의 추모시, 부산민예총 김경미 춤꾼의 진혼무, 가족인사와 장동표 산수이종률기념사업회 이사가 호상인사를 했습니다. 유족을 시작으로 영결식을 찾은 조문객이 차례로 헌화를 하며 영결식을 마무리했습니다.
故 배다지 의장은 1934년 부산 기장에서 태어나 1946년 장한국민학교 6년 동맹휴학에 참여하고 1948년 동래중학교 1년 재학 중 남한단정수립반대 동맹휴학 투쟁을 하고 2년 때 ‘삐라’를 제작하여 발포하려다 동래경찰서에 연행되어 물고문을 당하고 즉결재판으로 29일 구류하기도 했습니다. 1954년 부산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에 입학하여 산수 이종률 선생의 문하에서 수학했습니다. 국제신문사, 마산일보사에서 기자로 근무했으며 이종률 주도의 진보적 청년단체 민주민족청년동맹 창립에 참여, 정치권징 부장과 경남도맹 간사장을 맡아 활동했습니다.
1961년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를 결정하고 2·8한미경제협정반대 등 활동에 나섰습니다. 1987년 5월 자주평화통일부산회의 창립에 참여하고 1991년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에 참여하여 부산연합 상임의장을 역임했습니다. 1992년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부산 상임의장을 맡았으며 1995년 8월 부산땅 하야리아 되찾기 시민대책위원회 상임대표를 맡았습니다. 2010년 6월 민족광장 설립 후 돌아가시기 전까지 상임의장으로 활동하였습니다.
故 배다지 의장은 “민족자주 단호쟁취!”라는 글을 유언으로 남기며 남은 이들에게 슬퍼하지 말고 뜻을 이어가달라 당부하였습니다.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창립 때부터 큰 기둥 역할을 해주신 의장님의 뜻을 이어나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