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운동가 최상원 선생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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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통일운동을 몸바쳐온 통일운동가 최상원(83) 선생이 안타깝게 통일을 보지 못하고 향년 84세로 7월 22일 오후 6시 40분경 별세하셨습니다. 일제시대 때 민족해방운동을 시작으로 평생을 통일운동에 매진해왔던 최상원 선생은 오랜기간 옥고의 휴유증으로 3년전부터 건강이 악화되어 요양을 해오셨습니다.
1932년 6월 경주에서 태어나 동경철도고를 나온 최선생은 1945년 1월 일제시대 강제 징병되어 조선 제28특별공병부대에서 탈주를 도모하다 수감된 뒤 해방이후 풀려났습니다. 최선생은 해방 직후 고향인 경북 경주시 내남면에서 건국준비위원회와 인민위원회 활동을 하다 수감됐으며, 1972년에는 반공법 위반으로 다시 체포되는 등 수차례 옥고와 사회안전법으로 인해 10년간 주거제한까지 묶이기도 했다. 1991년부터는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이하 범민련) 활동에 참여해 1998년에는 범민련 남측본부 고문으로 활동해오셨습니다.
최선생의 부인은 "잊혀진 여전사" 다큐멘터리로도 잘 알려진 여성 빨치산 박순자(76) 선생이십니다. 박선생은 "일제시대 고문의 영향과 수차례 옥고로 몇년사이에 건강이 많이 나빠지셨다가 결국 통일된 조국을 보지 못하고 영면하셨다"며 "평생 통일된 조국을 위해 일했던 최선생의 신념은 계속 살아 숨쉴 것"이라고 말문을 잇지 못하셨습니다.
최상원 선생의 유족으로는 부인 박순자 선생과 큰딸 최혜숙(40) 씨 등 2남 6녀가 있다. 빈소는 부산 광안동에 소재한 좋은강안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차려졌으며 장례는 4일장으로 치뤄집니다.
한편, "통일애국열사 최상원선생 장례위원회"는 24일 오전 7시에 추도식을 갖기로 했습니다. 발인은 25일 오전 7시 30분이며 8시에는 영결식을 치를 예정입니다.
장례위원회는 일단 영락공원으로 장지를 정했으나 장기수 이상철 선생이 모셔져 있는 나무정사에 함께 모시기로 했습니다. 또한 선생의 유해를 북측으로 송환하기 위한 노력도 기울일 계획입니다.
최상원 선생이 걸어온 길
1923년 6월 8일 경북 경주군 내남면 노곡리 출생
1942년 3월 동경철도고등학교 토목과 졸업
1945년 1월 일제하 강제징병된 조선제28특별공병부대에서 탈주를 도모하다가 수감
1945년 8월 해방으로 풀려남. 적산매매 반대운동 전개, 건국준비위원회 내남면 치안대장
1945년 9월 경주군 내남면 인민위원회 보안부장
1945년 10월 경주군 내남면 농민조합 선전부장
1945년 11월 국군준비대 내남면 지대장
1946년 1월 경주군 민주청년동맹 부위원장
1946년 6월 농민조합원 소작권 옹호 투쟁하다가 피검
1946년 10월 10월인민항쟁에 참여
1946년 11월 경주군, 양남면, 양북면, 감포읍 삼면 조직책임자
1947년 7월 경주 동산령에서 야산대 조직
1947년 10월 체포되어 3년 징역 선고 받음
1948년 3월 3.1절 옥중에서 2.7구국투쟁 감행
1948년 4월 김천형무소로 이감
1948년 8월 단독정부수립반대 옥중투쟁
1952년 8월 부산에서 체포
1960년 4월 4.19학생투쟁 후원 및 남북학생회담추진 후원
1960년 10월 경주군 내남면 피학살유족회 결성
1972년 1월 반공법위반으로 체포되어 징역 4년 선고 받음
1975년 5월 사회안전법 발효로 10년간 주거제한에 묶임
1987년 3월 민주화투쟁에 참여
1991년 8월 범민련에 참여
1998년 8월 범민련 남측본부 부경연합 고문, 범추본 상임위원장에 선임
2000년 6월 8.15범민족대회 참석을 이유로 징역 1년6월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 받음
2004년 11월 건강이 악화되어 요양
2007년 7월 22일 오후 6시 40분 영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