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열사
민주열사 (노동운동가)
이름 : 최윤범
민주열사 (노동운동가)
이름 : 최윤범
고려피혁 성남공장은 200여 노동자가 슈발리에 구두를 생산하는 대우계열 중소기업으로,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해야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더이상 노동자가 자본가의 노예일 수 없다고 생각한 최윤범동지를 중심으로 민주노동조합가 건설되었다. 그러나 본조의 공작에 의해 성남공장은 지부가 되었고, 지부장 선거과정에서 회사측과 어용노동조합 측에 의해 민주노동조합측이 패배하자 회사는 민주노동조합에 대해 탄압을 시작했다. 부서이동과 해고가 자행되고, 이에 반대하며 농성에 돌입하자 회사측과 어용노동조합 측은 민주노동조합 측을 회사 밖으로 밀어냈고 민주노동조합측은 회사밖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에 들어가기에 이르렀다. 농성 3일째, 노동부가 중재를 한다며 회사측과 협상에 들어갔으나 회사측은 그사이 물품을 빼돌리려 했고, 이에 항의하며 몸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동지는 온몸에 신나를 붓고 분신 산화하였다.
프로필
1960년 서울 출생1976년 9월 서울 장충중학교 졸업. 잉글랜드사, 에펠사, 시엔나사에서 근무
1988년 2월 26일 고려 피혁 노조위원장 선출
1988년 4월 24일 해고 징계에 맞서 작업거부 철야농성
1988년 4월 25일 관리자들과 몸싸움 중 분신
1988년 4월 30일 한강성심병원에서 1시경 운명
용인 가톨릭 묘지에 안장
민주열사 (노동운동가)
이름 : 최태욱
민주열사 (노동운동가)
이름 : 최태욱
90년 5월 30일 노동조합 위원장과 함께 조합원 14명을 회사측은 노동자와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야간 근무조를 조합원으로만 편성하여 근무를 지시하였으며, 위원장을 비롯한 조합원들이 이를 부당노동행위로 간주, 퇴근해 버리자 징계위원회에 최태욱 동지를 회부하여 해고하였다. 이러한 회사측의 부당한 해고에 항의하던 동지는 90년 7월 8일 오후 6시경, 청도 천주교 성당에서 신나를 끼얹고 분신을 기도, 신음 중인 것을 신부가 발견하여 곧 병원으로 후송하였으나 운명하였다.
프로필
1990년 5월 9일 해고1990년 5월 14일 원직 복직
1990년 5월 30일 재차 해고
1990년 7월 8일 청도 천주교 성당에서 분신
1990년 7월 14일 투병 중 운명
경남 남천면 장미공원 묘역에 안장
민주열사 (노동운동가)
이름 : 홍기일
민주열사 (노동운동가)
이름 : 홍기일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시 시민군으로 참여하여 총상을 입기도 했고, 그후 건축노동자로 일하면서 살아남은 부끄러움을 승화시켜 이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모색하여 살아왔던 동지는 광복 40주년을 맞이하던 1985년 8월 15일, 광주민중항쟁의 역사적 장소인 도청 앞에서 동지는 몸에 불을 붙인 후 "8·15를 맞이하는 뜨거움의 무등산이여, 그토록 울부짖으며 부르짖던 민주가 자유가 뜨거움의 이름으로 5년이 흐른 이 시점에서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이 현실에 무등을 보기가 부끄러울 뿐입니다. 침묵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착취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광주 시민이여 침묵에서 깨어나라 민주주의 만세! 민족통일 만세! 뭉칩시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분신했다. 동지는 임종을 지켜보는 부친에게 "절대 비굴해지지 마세요, 경찰과 타협해서는 안되요"라는 유언을 남기고 산화하였다.
프로필
1960년 전남 화순 출생 전남 중학교 중퇴1984년 2월 사우디에서 미장공으로 취업
1985년 2월 귀국하여 건설사업장 전전하며 생활
1985년 8월 15일 오후1시 전남도청 앞 금남로에서 '8·15를 맞이하는 뜨거움의 무등산이 여!'라는 전단을 뿌리고 군부독재에 항거하며 분신, 운명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민주열사 (노동운동가)
이름 : 홍장길
민주열사 (노동운동가)
이름 : 홍장길
홍장길 동지는 밀양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가난의 굴레를 벗고자 박정희 정권의 인력 수출정책인 파월장병으로 월남전에 참여하였다. 이후 그것만으로는 가난의 굴레를 벗지 못하고 남들이 천하게 여기는 택시 노동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러나 택시 사업주들은 이윤창출을 위해 현대판 노예제도를 도입하여 무사고 10년에 개인택시 영업권이라는 제도의 올가미를 씌워 족쇄를 채웠고 국민캡 사장 허준도는 그것도 모자라 회사를 분할매각하고 기사를 택시의 부품처럼 끼워팔아 노동조합을 와해시키는 행위를 서슴없이 자행하였다 하지만 홍장길 동지는 분할매각 완전철회를 외치며 24년 8개월이라는 한많은 국민캡 노동자생활과 60년 인생을 택시 자본가에게 죽음으로서 저항한 것이다.
프로필
1939년 7월 8일 경남 밀양군 출생 밀양수산 동명중학교 졸업1973년 연희교통 (현재 국민캡) 입사
1992년 노동조합 상임위원 재임
1994년 노동조합 고문으로 선임 활동
1997년 5월 31일 국민캡 휴게실에서 음독자결. 운명
민주열사 (노동운동가)
이름 : 황보영국
민주열사 (노동운동가)
이름 : 황보영국
황보영국 동지는 울산 현대중공업, 부산 삼화고무, 태화고무, 우성사 등에서 연강판전기용접, 중장비 운전 등의 기술을 익히면서 생활하던 성실한 노동자였다. 1987년 5월 17일, 광주항쟁 7주기를 맞이하여 거사를 결심한 동지는 부산상고 앞에서 온몸에 석유를 끼얹고 불을 붙인 후 "독재타도, 광주학살 책임지고 전두환은 물러가라, 호헌책동 저지하고 민주헌법 쟁취하자"를 외치며 100m를 달리다 쓰러졌다. 동지는 쓰러지면서도 "하나님 이 나라를 불쌍히 여겨주소서"라고 절규하며 혼절, 그후 경찰에 의해 백병원으로 옮겨져 치료하다 일주일만에 운명하였다.
프로필
1961년 9월 16일 부산 출생1979년 성지공고 중퇴
울산 현대중공업, 부산 삼화고무, 태화고무 근무
1987년 3월 3일 박종철 49재에 참석했다가 연행되어 1주일간 구류받음
1987년 5월 17일 부산상고 앞에서 "독재타도, 광주학살 책임지고 전두환 은 물러가라, 호헌책동 저지하고 민주 헌법 쟁취하자"를 외치며 분신
5월 25일 운명
민주열사 (장기수)
이름 : 권양섭
민주열사 (장기수)
이름 : 권양섭
권양섭 선생님은 종형을 도와 항일운동을 시작하였으며 1934년에 서울에 상경하여 종형이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되었다가 출옥하자 종형과 발동기 판매가게를 운영하지만 형사들의 감시로 가게를 정리하고 대구로 내려와 운수노동자의 생활을 하였다. 1943년 만주로 가서 항일운동을 했던 1945년 해방을 맞이하여 봉화군 인민위원회 활동을 하고 남로당 대구지역 대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46년 10월 대구민중항쟁을 겪고, 1948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제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에 대의원자격으로 참가한 선생님은 간부학교에서 사상학습과 군사훈련을 받은 뒤 5개월 만에 대구로 돌아왔으나, 대구역에서 체포되어 4년형을 선고받고 대구 형무소에서 복역하던 중 종형의 죽음을 맞이하셨다. 1952년 석방되었지만, 1972년 2월 경북지역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검거되었다. 선생님은 22년동안 복역하시다가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셨으나, 1997년 3월 18일, 오랜 옥고의 후유증으로 임종하였다.
프로필
1917년 경북 봉화군 출생1943년 종형과 만주로 가서 종형의 항일 운동을 도움
1945년 해방과 더불어 봉화 인민위원회 활동. 남로당 대구지역 대의원으로 선출
1948년 대구역에서 체포. 4년형 선고
1952년 석방
1972년 경북지역 통혁당 사건으로 검거. 부인과 3명의 아들, 여동생, 제수씨까지 체포
1993년 3월 6일 22년만에 형집행정지로 석방
1997년 3월 18일 오랜 옥고의 후유증으로 인한 직장암으로 투병 중 운명
민주열사 (장기수)
이름 : 김광길
민주열사 (장기수)
이름 : 김광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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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1923년 3월 26일 광주 북구 임동에서 출생1941년 광주우체국에 입사
1945년 조선공산당에 입당
1950년 화순군당 위원장, 빨치산 투쟁
1951년 12월 30일 화순 말봉산에서 체포
1952년 4월 3일 사형선고 후 20년형, 대전교도소 수감
1960년 4월 19일 4·19혁명으로 17년 9개월로 감형
1969년 9월 25일 출옥
1976년 9월 25일 사회안전법으로 청주보안감호소에 재수감
1988년 12월 23일 비전향으로 출옥 함평군 나산면 이문리 산골에서 혼자 생활
1991년 4월 28일 교도소 생활중 얻은 간암으로 함평군 나산면 이문리 산골에서 운명
민주열사 (장기수)
이름 : 김용원
민주열사 (장기수)
이름 : 김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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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1935년 경남 함일군 출생서울대학교 물리학과 졸업
4·19 이후 서울대 학생민통련 참가
5·16 이후 연행, 조사받고 나옴
1964년 소위 1차 인혁당 사건으로 연행, 조사받고 나옴
1974년 4월 인민혁명당재건단체사건으로 구속 당시 경기여고 교사
1975년 4월 8일 대법원에서 사형확정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예비음모, 반공법 위반)
1975년 4월 9일 사형집행
민주열사 (장기수)
이름 : 도예종
민주열사 (장기수)
이름 : 도예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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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1924년 12월 25일 경북 경주시 서악 출생대구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4·19 이전 대구대학교 (현 영남대학) 경제학 강사
4·19 이후 경북 영주군 교육감 당선 민주민족청년동맹 간사장
1964년 소위 1차 인혁당 사건으로 구속 3년형
삼화건설 회장
1974년 4월 인민혁명당재건사건으로 구속
1975년 4월 8일 대법원에서 사형확정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예비음모, 반공법 위반)
1975년 4월 9일 사형집행
대구 칠곡현대공원에 안장
민주열사 (장기수)
이름 : 박판수
민주열사 (장기수)
이름 : 박판수
박판수 동지는 진주농업학교 3학년때 반일지하조직의 책임자로 항일운동하였고 38년 일본 동지사대 재학 중 반일운동으로 퇴학당하고 구속되었다. 45년 해방과 동시에 건준위에 참여하였으며, 한국전쟁 당시에는 지리산에 입산하여 유격투쟁을 하였다. 52년도에 체포되어 15년형을 선고받고 대전교도소에서 복역하던 중 조직사건에 연루되어 5년형을 추가 받고 복역하였다. 1960년에 병보석 출소하였으나 72년 지하조직사건으로 다시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며 총 24년의 징역을 살았다. 이후 조국의 민족민주운동과 통일운동에 전념하던 중 92년 1월 18일 지병으로 운명하였다.
프로필
1918년 9월 10일 경남 진양군 진성면 중촌리 출생1938년 일본 동지사대학 재학 중 반일운동으로 퇴학, 구속
1944년 덕유산 입산하여 반일투쟁 준비 중 해방을 맞아 건국준비위원회에 참여
1947년 남로당 함양군 군당부책으로 지하활동 하다 지리산에 입산, 경남지구당책 역임
1953년 2월 교전 중 체포되어 15년형 선고받음
1960년 4·19 이후 병보석으로 출소
1972년 지하조직사건으로 피검
1986년 3월 24년의 옥고를 마치시고 만기출소 함
1992년 1월 18일 밤11시 30분에 지병인 기관지 천식증세의 악화로 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