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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료와 인물]황보영국(1961.2.3~1987.5.25) 이야기
번호 27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11-02 오전 9:16:36 조회수 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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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 연재를 시작하고 있는 ‘사료와 인물’ 코너는, 지난 호에서 6월항쟁의 박종철과 이한열 열사에 비해 덜 알려진 부산의 이태춘 열사를 기리었다. 그리고 우리는 동시에 또 한 명의 부산 6월항쟁의 열사 황보영국을 떠올려야 한다. 이태춘은 대졸 출신의 화이트칼라 노동자다. 황보영국은 고등학교를 중퇴한 블루칼라 노동자다. 내가 만약 그를 제대로 기억하는 작업을 하지 않는다면, 민주화운동의 서열화가 몸에 내재화된 것은 아닌가? “불안한 양심”에 떨렸다. “나뭇가지 위에 얹힌 돌덩이처럼” 깨어 있는. 황보영국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황보영국은 노동자 가정의 4남 1녀 가운데 3남으로 태어났다. 성지공업고등학교 2년을 중퇴하고 울산의 현대중공업과 부산의 삼화고무, 태화고무, 우성사 등에서 노동자로 일했다. 1987년 26세 청년 황보영국은 2월 7일 ‘박종철 추도대회’에 참여했고, 경찰에 연행되어 1주일간 구류를 살았다.
6월항쟁이 전국적인 규모에서 일어났지만 부산은 유독 더 뜨거웠다. 여러 이유가 있을 테지만 1987년 4월 부산가톨릭센터에서 열린 ‘광주항쟁 사진전’을 드는 이들이 많다. 사진전을 보기 위해 부산가톨릭센터 건물 밖을 넘어 길을 따라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면, 당시 ‘광주항쟁 사진전’에 대한 부산 시민의 관심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기록에는 없지만 ‘박종철 추도대회’에 참여한 황보영국의 민주적 각성을 보아 그는 당연히 이 사진전을 보았을 테다. 그것이 부산의 20대 청년 노동자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까!
황보영국은 광주항쟁 7주년을 하루 앞둔 1987년 5월 17일 오후 4시 20분경 서면 부산상고(현 롯데백화점 부산본점) 앞 도로에서 몸에 기름을 붙고 라이터를 당겼다. 라이터를 당기는 순간 그의 손은 얼마나 떨렸을까! 온몸이 불덩이가 되어 복개천도로로 달려 나오면서 외쳤다. “독재타도!” “광주학살 책임지고 전두환은 물러가라!” “호헌책동 저지하고 민주헌법 쟁취하자.” 황보영국은 6월항쟁의 열사이지만 동시에 광주항쟁에 대한 부산의 ‘양심’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는 소위 운동권에서 조직적인 활동을 하지 않았다. 홀로 외로이 자신의 양심을 지켜나갔고, 교회에 다녔다. 불덩이가 된 몸이 쓰러지면서 마지막으로 절규했다. “하나님 이 나라를 불쌍히 여기소서!”

황보영국이 쓰러지자 인근에 있던 전경들이 뛰어와 다른 시민들이 보지 못하도록 그를 에워싸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한다. 그러나 “주변 식당의 아주머니들이 소방호스를 들고 나와” 불을 껐고, 그는 119차로 백병원으로 후송되었다. 황보영국은 중환자실에서 “의식불명의 상태에서도 붕대로 칭칭 감긴 손을 꿈틀거리며 ‘독재타도’를 신음처럼 외쳤”다.
열사의 분신 이후 경찰과 당국의 태도는 그들이 얼마나 이 사건의 파급력을 두려워했는지 보여준다. 경찰은 병원 측의 협조로 ‘면회사절’이란 팻말을 걸어놓고 외부 인사들의 문병을 통제했다. 황보영국은 1주일을 버티다 5월 25일 새벽 5시에 끝내 운명했다. 경찰의 협박과 회유로 가족들은 소식을 듣고 찾아간 민주인사들의 접근을 거부했다. “‘개인적인 문제이다’, ‘영국이는 친구가 없다’, ‘주민등록증을 보여달라’, ‘경찰이 수고를 많이 한다’”고. 심지어 25일 부고를 듣고 달려간 인사들에게 이미 화장했다고 거짓을 말하고, 다음날인 26일 경찰의 의도대로 몰래 화장했다. 부산민주시민협의회에서는 장례 이후에도 수차례 집으로 찾아가 열사의 기록물을 찾기 위해 애썼으나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이미 깨끗이 치워버린 상태였다.
최근 황보영국 아버지의 언론 인터뷰에 의하면, “경찰들이 매일 같이 2~30명씩 찾아오고” “우리(경찰) 얼굴을 봐서라도 시킨대로 해달라”고 했다 한다. 아버지는 “남은 4명의 자식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다른 자식에게 불이익이 갈까봐 전전긍긍해 온몸으로 불의의 시대에 항거한 아들의 뜻을 감추려고만 했다. 안타깝고 마음 아픈 일이다. 다만 한 가지 언급하고 싶다. 아들이 다니던 교회에서 장례식 이후 한 말씀을 청했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볼 낮이 없어서 나서지 못했다.”

황보영국의 분신은 1987년에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의 목숨을 내건 항거는 이후에도 오랜 시간 주목받지 못했다. 그는 대학생도 아니었고, 대기업 노동조합원도 아니었다. 홀로 각성한 평범한 민주청년이었다. 그의 삶도 죽음도 홀로 벌이는 외로운 사투였다. 그가 더 이상 외롭지 않았으면 한다. 부디 우리의 기억 속에서 함께 하기를. 기억 속의 황보영국은 6월항쟁에 갇혀있지 않다. 그는 광주항쟁에 대한 ‘부산의 양심’이다.


최은정(민주공원 사료 담당. 민주주의사회연구소 연구원)

<참고 사료 및 인터뷰 자료>
「호외」(부산민주시민협의회, 1987.5.19)
『민주시민』13호(부산민주시민협의회, 1987.5.31)
「26세 분신 노동자 황보영국: 가족 괴롭힌 압박?회유」(『헤럴드경제』, 201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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